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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군내버스. 완도군 제공

광주·전남 지역 지자체들이 농어촌 주민과 도심 취약 계층의 보편적 이동권 보장을 위해 군내버스 무료화, 공공시설 셔틀버스 도입 등 과감한 교통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이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 부담과 기존 교통 업계와의 상생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촌 지역: 연간 수십억 원 투입되는 '무료 군내버스'

전남의 곡성군을 비롯해 영암, 진도, 완도군 등 농촌 지역에서는 군내버스 무료화를 통해 노인 등 교통 취약 계층의 이동 편의를 대폭 개선하고 있다.

특히 곡성군은 내년부터 무료 군내버스를 전면 시행하며 기존 '1천원 버스' 운영에 투입되던 연간 35억~40억 원 규모의 재정 지원에 더해 연간 약 5억 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이는 곡성군이 기존에 부담하던 적자 보전 비용의 약 12.5% 이상이 증가하는 수치다.

곡성군은 이를 통해 하루 이용객 1,400명 규모에서 10~20%의 이용객 증가를 예상하지만, 문제는 이 비용이 고스란히 지자체의 고정적인 재정 부담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기우식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은 "인구 소멸 지역에서 이동권 보장은 중요한 복지이나,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도록 불필요한 사업을 줄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재정 확충이 어려운 지방정부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심 지역: 셔틀버스 도입, 마을버스 존폐 위협

광주 남구 등 도심권 지자체는 시내버스 무료화 대신 공공시설 셔틀버스를 도입하며 이동권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21곳이 이미 무료 셔틀버스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특히 서울 성동구의 경우 지난달부터 노선을 4개로 늘렸고, 중구는 공공시설별로 개별 운영하던 셔틀버스를 통합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기존 마을버스 업계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광주 마을버스 운송조합 관계자는 "공적 자금으로 적자를 보전받는 시내버스와 달리 마을버스는 재정 적자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라며, "셔틀버스가 마을버스 기존 노선과 중복될 경우 승객 이탈로 인한 치명적인 재정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셔틀버스 운영 예산을 마을버스 지원금으로 전환하여 노선을 확대하는 것이 지역 교통 복지 증진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셔틀버스 정책이 결과적으로 이중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마을버스.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타 지역 성공 및 실패 사례 분석: '재정'과 '업계' 갈등은 반복되는 숙제

광주·전남 지역에서 나타나는 재정 부담 및 기존 교통 업계와의 마찰은 유사 정책을 추진한 다른 지자체에서도 반복된 문제다.

대규모 정책의 '비용 대비 효과' 실패 사례

서울시 미세먼지 대중교통 무료 운행 정책 (실패): 이명박 정부 당시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켰던 사례와 같이, 서울시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대중교통 무료 운행을 시도했으나 비용 대비 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에 부딪혀 정책을 중단했다.

이는 명확한 목표 없이 막대한 예산(당시 수백억 원 규모)만 투입될 경우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료 정책의 '풍선 효과' 및 업계 연쇄 타격 사례

충북 진천·음성군 시내버스 무료화 (갈등): 지난 1월부터 시내버스를 무료 운행 중인 진천·음성 지역에서는 무료 시행 석 달 만에 시외버스 승객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무료 시내버스가 인근 지역을 오가는 시외버스나 민간 운수 업체의 승객을 '흡수'하는 풍선 효과를 낳아, 기존 업계의 적자 폭을 확대하고 존폐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부작용을 초래했다.

성공적인 '교통 복지'의 재정 규모와 타겟 설정

2023년부터 누구나 무료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청송군은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교통 복지 향상에 기여하며 운전기사와 승객 모두 만족하는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세종시는 2025년 국제금강정원박람회에 맞춰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추진했으나, 박람회가 순연된데다 연간 약 174억 원이라는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정책 실행에 신중을 기하는 상황이다.

경남 창원시는 65세 이상 무료 탑승을 공약했으나 재정 문제로 대상을 75세 이상으로 축소했고, 제주도 역시 무임승차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낮추는 조례 개정안에 대해 재정 부담 문제를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복지 효과 극대화 위한 '지속가능성' 설계가 핵심

현재 광주·전남 지역의 무료 교통 정책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장밋빛 기대가 재정 압박과 업계 갈등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중앙-지방 재정 분담 체계 구축: 지자체의 과도한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재정 지원 및 보전 방안 마련. 특히 지방 소멸 위기 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정책 효과 대비 비용 효율성 검증: 무료 버스 도입 후 예상되는 이용객 증가율과 투입 예산의 실질적인 복지 효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재정비하며,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정책의 목표와 수혜 범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노선 설계의 정교화 및 업계 지원: 공공 셔틀버스의 경우 마을버스 노선과의 경쟁 및 중복을 최소화하고, 교통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노선을 재조정해야 한다. 또한, 무료화 정책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기존 교통 업계에 대한 직접적인 예산 지원 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지속가능성 설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광주·전남의 '무료 교통 복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역 주민 삶의 질을 영구적으로 개선하는 성공적인 복지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